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리뷰/문맹을 향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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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리뷰/문맹을 향한 도전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8. 1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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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

1935년에 태어난 작가는 헝가리어로 시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언어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녀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로 인해 남편과 함께 4살 된 딸을 데리고 고국을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의 뇌샤텔로 이주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국경을 넘는 그녀의 한 손에는 애기젖병과 애기용품을 담은 가방을, 한 손에는 사전을 들고 있었다. 시를 발표할 정도로 언어를 잘 다루던 그녀가 또 다른 외국어로 둘러싸인 이방의 도시에 진입한다는 것은 ‘문맹’의 문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쓰고 또 쓰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녀는 모국어가 아닌 강제된 언어인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있다.     

 

 

 

문맹을 향한 도전

내가 만약, 모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이질적인 이방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강제당하게 된다면?

영어는 그나마 좀 나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어...아, 나는 언어가 암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대학 1년때 교양수업으로 외국어를 배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성조는 왜 그렇게 많은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는 독일어였다. 남성, 여성, 중성, der des dem den dir der der die das des...맞나? 성, 수, 격...절망이다. 대학1년 때 배운 라틴어는 우아...명사 접미어가 a가 많았다. aqua...뭐 이런, 라틴어 단어를 많이 알면 영어 vocabulary암기 때 도움이 많이 되긴 한다. 일본어는 배운 적도 없고...러시아는 차이코스프키, 무소르크스키, 스트라반스키, 이노무스키...ㅋㅋ뭐 이런거 밖에 몰라...

 

 

요근래 <베킷>이란 넷플릭스 영화를 보았는데, 스토리의 배경이 그리스였다. 그리스의 지하철에는 Exodus란 그리스어가 적혀 있었다. 아는 단어가 나와 반가웠다.  엑소더스Εξοδος는 Εξ(ek~from out of)와 οδος(way, road)란 말이 합쳐진 단어이다. 이렇게 보면, 정말 세상의 모든 언어는 연결되어 있다. 주식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지구촌이 얼마나 긴밀하게 경제적인 공동체로 묶여져 있는가 하는 것을 '새발의 피'만큼 느낀다. 모든 언어도, 모든 경제도, 모든 지식도 다 연결되어 있다.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어쩌다가 영문학과를 들어가 수업을 듣게 되었다. 설레고 기대되는 영문학 수업 시간이었다. 그런데, 영어에도 문법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영어 <형태론>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영어문장이 수학으로 행렬을 마구 들이대고 있었다. 그때 정말 충격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 왜 연결이 되는지, 왜 피타고라스라는 철학자가 왜 수학자이기도 했는지를 그때 확 느꼈다. 인문학은 인문학이고, 수학은 수학이고 그게 아니고, 세상의 모든 학문은 다 통한다는 것, 지식이 그렇게 연결된다는 것...나는 이 에피소드를 자주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그 때 받은 충격은 이루말 할 수가 없다. '귀신 피할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속담처럼 뭐 그런 케이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의 학문이 연결되고, 언어가 연결된다고 해도, 헝가리인이 프랑스어로 글을 써서 자신을 표현해내는 작가라면, 얼마나 언어를 제대로 해야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자기 혼자서 일기만 적고 자신만 본다면야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 글을 세상인들에게 유통시킬려면 프랑스어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아고타 크리스토프에겐 큰 장애물이었다. 그 장애물의 이름은 '문맹'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란 듯이 써냈던 것!

 

 

운명의 시간에 작가는 도전한다. 문맹을 향한 도전! 글쓰기를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국어가 아니기에 언어의 연금술사가 될 순 없겠지만, 결국 강제된 상황과 환경과 시대에 의해 또 다른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을 것이다. 문맹을 향한 도전이라...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베를린 어느 저녁, 우리는 낭독회를 갖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러, 내 이야기를 들으러, 나에게 질문하러 올 것이다. 나의 책, 나의 삶, 나의 작가로서의 여정에 대해.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103p).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봤어. 그 여자들은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는 가사일도 하고 육아도 해."

나는 말한다.

"그게 내가 스위스에 와서 했던 일이야."

그녀가 말한다.

"게다가, 그녀들은 프랑스어조차 몰라."

"나도 할 줄 몰랐어."

내 친구는 곤란해진다. 그녀는 나에게 텔레비전에서 본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 줄 수가 없다. 그녀는 내가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고 공장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가족을 돌보는 그 여자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과거를 잊어버렸다.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공장, 장보기, 아이, 식사, 그리고 마지의 언어. 공장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렵다. 기계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우리는 서둘러 담배를 피우며, 화장실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107-108p).




나의 시들을 실어주던 <헝가리 문예>가 있었고, 제네바 도서관에서 우편으로 받곤 했던 헝가리어 책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이미 읽은 책들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아무것도 안 읽는 것보다는 다시 읽는 편이 나았으니까. 그리고 다행히도 글쓰기가 있었다.

나의 아이는 곧 여섯 살이 될 것이고, 학교에 갈 것이다.

나도 시작한다.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한다.

스물 여섯 살의 나이에, 나는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 뇌샤텔 대학의 여름 학기 수업에 등록한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프랑스어 수업이다. 여기에는 영국인들, 미국인들, 독일인들, 일본인들, 독일어권 스위스인들이 있다. 입학시험은 쓰기 시험이다. 나는 하나도 쓸 줄 모르므로, 초심자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된다.

몇 번의 수업 이후 선생님이 내게 말한다.

"프랑스어를 아주 잘하는데 왜 초급반에 있어요?"

나는 그에게 말한다.

"나는 쓸 줄도 모르고 읽는 줄도 몰라요. 전 문맹이에요."

그는 웃는다.

"그걸 앞으로 살펴보죠.

2년 후,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는다.

나는 읽을 수 있다. 다시 읽을 수 있다. 빅토르 위고, 볼테르, 사르트르, 카뮈, 미쇼, 프랑시스 퐁주, 사드처럼 내가 프랑스어로 읽고 싶은 모든 작가들과, 포크너, 스타인벡, 헤밍웨이같이 프랑스어로 쓰지 않았지만 번역되어 있는 작가들까지 모두 읽을 수 있다. 책들이, 드디어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된 책들이 넘쳐난다.
나는 아이를 둘 더 낳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기와 철자법, 동사 변화를 연습할 것이다.

아이들이 내게 어떤 단어의 뜻이나 철자를 물어보면 나는 두 번 다시 "모른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번 확인해볼게."

그리고 사전을 확인해볼 것이다. 지치지 않고 확인해볼 것이다. 나는 사전과 사랑에 빠진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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