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이먼드 카버의 <제발 조용히 좀 해요>는 22개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소설집이다. 카버는 단편소설의 대명사인 체호프의 이름이 늘 그에게 따라 다닌다. 존 치버(‘교외의 체호프’)와 함께 ‘미국의 체호프’라고 불릴 만 하다. 그의 생애를 보면 1973년(35세)에는 존 치버와 함께 아래층, 위층에 살았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아래층 치버, 위층 카버! 어찌 이런 일이!
2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체호프를 비롯하여 스승이었던 존 가드너, 셔우드 앤더슨, 작가이자 편집자인 고든 리시, 그리고 존 치버까지 무수한 문인들이 그를 ‘단편소설의 거목’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레이먼드 카버를 흔히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있는 소설가”라고 이야기한 대목에서 그에게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헤밍웨이로 대별되는 “빙산이론”(생략이론)이 카버에게선 “미니멀리즘”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의 멘토이기도 했던 존 가드너는 25개의 단어로 말할 것을 15개의 단어로, 15개의 단어를 5개의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낫다는 식의 조언은 카버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친 셈이다. 그러기에 카버의 단편들은 압축적이며, 함축적이고 상징적이기도 하면서도 심플하다. 이것이 카버의 미니멀리즘이다. 하지만 카버의 이야기의 소재는 광활한 우주 저편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적인 소재가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기 때문에 가장 끔찍한”(426p)
은 가져오는데 그건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이다. 일상에서 삶에서 가져오는 흔하디 흔한 소재와 그 안에 숨겨둔 메시지의 검이 독자를 찌른다. 그것이 카버의 단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3
카버는 19세에 멋도 모르는 나이에 메리언과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책임감에 생계에 늘 시달리면서 생활고의 압박감 가운데서 글을 썼다. 그가 거했던 가정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그의 글의 소재이다. 그렇다고 그가 전적으로 자전적인 소설가란 말은 아니다. “가족”이란 보따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말이다.
4
자, 이제 카버의 단편이야기들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22개의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느낀 것만 적고 싶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잡초’에 대한 화두이다. 우리는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부부와 자녀들과 관계를 맺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잡초란 것은 가만히 놔두어도 잘 자란다. 장마 때는 잡초는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아도 쑥쑥 자라는 것이 잡초의 생리이다. 우리의 사람의 마음 속에도 이런 잡초가 자란다. 그 잡초를 미리 잘라내지 않으면 혹독한 고통을 맛보게 마련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날카로운 시각은 이런 가정 안에 나타난 ‘마음의 잡초’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의 잡초’는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소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그 잡초 자신은 땅에 기생하다가 나중에는 기세를 등에 업고 땅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가족, 가정의 터전 위에도 마음의 잡초는 기생하는 듯, 위태위태하게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후에는 가정을 장악하여 압도하고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5
단편 <이웃 사람들>에서는 이웃 사람이 맡겨두고 간 열쇠로 이웃집을 허락도 없이 문을 따고 들어갔다가 열쇠를 두고 문을 잠가 버린 가족이야기가 나온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이웃집에 대한 열렬한 호기심이 그들의 마음의 잡초였다. <제리와 몰리와 샘>에서 아빠이자 남편인 앨은 애완견 수지를 거추장스런 존재라고 여기고 가족들 몰래 버리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는 수지를 속시원하게 버리고 집으로 돌와왔을 때 집안은 완전 난리법석이었다. 수지가 오줌을 싸고 집안 이곳 저곳에 흉터를 남긴 것 뿐만 아니라 자신에겐 성가신 존재였지만, 아내와 자식들에겐 사랑스런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단순히 개를 버린 행위만이 문제가 아니라 앨에겐 가정에서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기 안의 ‘마음의 잡초’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는 남편 랠프는 아내 매리언의 몇 년전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한다. 행복하고 평범해보였던 가정에 균열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랠프는 계속 물어대자 아내는 몇 년 전 이웃집 앤더슨 부부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술에 취해 앤더슨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고 거기에서
“그 사람이 우리 한번 할까요. 그러더라구요.”(393p)
이 사태로 인해 남편 랠프는 밖에서 표류하며 방황하며 밤을 새고 들어와 욕실로 들어간다. 아내가 머라고 머라고 한다. 이 가정에 심겨진 ‘마음의 잡초’로 인해 랠프는 매리언에게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라고 말한다.
6
우리는 매일 매일 마음의 잡초를 쳐내야 새로워질 수 있다. 잡초는 땅에 기생해서 나중에는 땅을 잠식해 들어간다.
구약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가서 2장 15절에 있는 구절이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커버는 이 마음의 잡초를 보여준다. 꽃이 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세밀하게 그려준다.하지만 대안은 없다. 보여줄 뿐이다. 문학은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보여줄 뿐이다. 압축하고, 축소하고, 작게하고, 상징화해서 이야기를 소설이란 식탁에 내놓는다. 그래서 레이먼드 카버의 이 작품은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7
근데 카버도 참 힘들게 살았구나 싶다.
파산도 두 번, 결혼도 두 번, 별거생활, 알코올 중독, 중독치료차 병원에 입원에, 39세에 금주를 결심하고 살고, 전처의 친척들과의 복잡한 관계들로부터 피하기도 하고, 폐출혈, 폐절제수술 그리고 암, 방사선치료, 1988년 8월, 50세에 죽었다니 말이다. 그것도 잠결에 죽었다는데, 두 번째 부인인 테스의 마음이 참 아팠겠다 싶다. 레이몬드 카버도 평생 가난과 혈투를 벌이며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의 마음의 독소, 그의 마음의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아니면 잊기 위해 그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단명하게 만든 셈이기도 하다. 그는 사망하기 한 달 전에 인터뷰에서
“내가 작가 말고 다른 것으로 불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시인 정도”(438p)
라는 묘비명에 가까운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에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더 많은 단편들과 소설들, 그리고 시를 독자인 우리들은 음미해 볼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아메리칸 체호프” 레이먼드 카버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수 많은 ‘마음의 잡초’를 보여주었고, 자신 또한 인간적인,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존재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떠났던 것이다.
8
오늘따라 그의 생애가 더욱 내게 위로가 된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리뷰/남녀관계의 본질과 결혼을 위한 진정한 조건을 파헤친 걸작 (12) | 2021.08.19 |
---|---|
길을 잃고 방황한 자만이 자신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feat. 정재승의'열두발자국'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4) | 2021.08.18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결혼에 대한 소고(小考)/-Charlotte Lucas와 Collins의 결혼을 중점으로 한 비판 (0) | 2021.08.17 |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리뷰/문맹을 향한 도전 (2) | 2021.08.16 |
장강명의 소설/한국이 싫어서/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자의 이야기 (6) | 2021.08.1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