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알KaRL21입니다.
오늘은 2008년도에 케이트 윈슬렛을 영예로운 자리에 올려놓게 만든,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이 작품은 독일의 소설가이자, 법학자인 베른하른트 슐링크가 1995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국과 독일의 합작영화드라마이고, 감독은 스티븐 돌도리가 맡았는데요, 이 감독이 <빌리 엘리어트>, <디 다워스> ,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 감독상에 3번 지명되기도 한 유명한 감독입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감수성,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문학적 영상미가 돋보이는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케이트 윈슬렛 또한, 연기자로서 엄청난 인정과 상을 받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연기자로서 점점 숙성된 면모를 보여준 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수치심과 죄책guilt에 대한 소고小考
Index
1 The Leader가 아니라 The Reader(2008)!
2 이 영화는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였다
3 첫째,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이다
4 책 읽어주는 커플의 이야기
-책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하는 여자의 수치심
5 마이클이 다시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다
6 둘째, 이 영화는 한 민족과 한 민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7 한나와 마이클의 로맨스는 다시 재생가능한가?
8 책 읽어주는 남자의 수치심
9 한 민족에 대한 한 민족의 죄책, 독일인의 유대민족에 대한 죄책
10 한나의 불굴의 용기
11 흥분된 감격과 감동의 ‘The Reader’
덧붙이며...
a 다시 리뷰를 쓰고 싶은 영화
b 연기자, 케이트 윈슬렛과 뱃살 에피소드
c 이 작품을 찍은 2008년은 케이트 윈슬렛에게 잊을 수 없는 해
일상의 번복됨으로 인한 무료함과 지친 여정 가운데서 내 눈에 들어와 박힌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더 리더’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인지 ‘더 리더’가 The Leader로 착각하기도 한 것 같다. 얼마나 무관심했으면...그리고 책표지에 나오는 여자가 그 유명한 케이트 윈슬렛인지도 몰랐다.
우연찮게 인터넷기사를 보다가 이 영화가 다루는 테마가 굉장히 끌렸다. 그래서 영화의 포장을 풀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색다른 소재로 시작되는 start부터가 묘해서 영화가 끌렸다. 잘 알려지지 않은 19살의 남자주인공, 데이빗 크로스(극중에서는 16세로 등장한다)의 등장에 뭐 이런 삼류영화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두 남녀가 만나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여자가 바로 그녀, 케이트 윈슬렛인 걸 알고는 이 영화는 간만에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워낙 삶에 쫓기다 보니 영화 한편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터였기에.
‘쥬드Jude’에 보았던 그녀, 그녀가 97년에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와 열연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명성을 안게 되었다. 그녀의 묘한 매력은 약간은 통통하게 오른 살과 선이 굵은 분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수많은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는 것으로 입증되는 물이 오른 연기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8년에 나온 이 ‘The Reader(책 읽어주는 남자)’를 통해 그녀는 2009년 각종 시상식에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2가지 큰 이야기 축, 이 영화는 2가지의 선을 그리고 있다.
10대의 소년과 30대 여성의 러브스토리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불같이 끌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다. 그 육체적인 사랑은 정신적인 교감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나이는 많지만 문맹인 여성인 한나(케이트 윈슬렛)와 단순한 성적인 호기심으로 시작된 10대 소년과의 관계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통해 교감하기 시작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 마이클!
정말 평범한 일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특별한 관계, 그 불장난 같은 그 단말마적인 장난으로 그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특별한 정신적인 교감, 독서행위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져간다. 그것은 바로 ‘책읽어주는 행위’를 통해서 이어진다. 아련한 추억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렸던 누나와도 같고, 엄마와도 같았던, 연인 한나에 대한 상처를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마이클은 법대생으로 수업을 받게 된다. 법대생이라면 의례히 법정에서의 벌어지는 사건을 참관하면서 교수와 토론을 하고, 수업하고 그러지 않는가! 그런데 그 10대 소년시절에 만났던 자신의 정부와 같은 그녀, 한나를 법정에서 우연찮게 만난다. 바로 그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한나 슈미츠.
책 읽어주는 남자와 책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하는 여자, 마이클과 한나입니다 한나의 수치심이 생각보다, 현실보다 더 컸다그 법정에서 그녀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살인한 책임을 물어 무기징역이라는 무거운 형량을 지게 된다. 책 읽어주는 남자, 그리고 그 책을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하던 여자의 수치심이 컸다. 그녀는 ‘수치심'을 선택하기 보다는 차라리 범죄의 책임을 자기가 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옆에서 지켜본 마이클은 그녀와 자신을 이어주었던 ‘책읽어주는 행위’로 그녀와 자신의 세월의 공백에 다리를 놓게 된다. 무기징역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그녀에게 어느 날 배달된 테잎과 녹음기, 그리고 ‘책 읽어주는 남자, 마이클’의 책 읽어주는 행위가 고스란히 그 속에 녹아나 있었다. 세월이 수십 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의 마음 가운데 남아있었던 그 사랑, 그 열정, 그 모든 것들이 마이클이 육성으로 읽어준 많은 책들, 이전에 두 사람이 나누었던 밀애의 추억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그 책읽어주는 목소리가 감옥을 가득 메우게 된다.
첫째,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이다.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보내진 마이클의 육성테이프들이다
이 두 남녀를 둘러싸고 있는 당시의 분위기이다. 독일인이었던 한나 슈미츠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비관으로 일하게 된다. 원래는 전철의 검표관이었지만 사무직으로 승진하는 통보를 받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수치심 때문에 사무직으로의 승진을 거부하고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서 일자리를 찾은 곳이 바로 수용소의 경비관이었다. 이 타이밍에 ‘꼬마’라고 불렀던 애인, 마이클과의 애정관계가 끊어지게 된다. 더 이상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관계라는 위험의식을 느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애정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30대 여성이라면 그 정도의 생각은 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겨우(?) 선택한 직업은 하필이면 독일인의 치부였고, 심각한 종양과도 같은 수용소 경비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문맹이라는 수치심과 그녀의 어린 연인과의 이별, 그리고 이직...그리고 또 수치심...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한나 슈미츠에게도, 아니 독일 민족, 아니 전인류에게 적용되어지는 명문장인 듯 합니다
무기징역의 형량이 20년으로 줄어들었다. 그녀는 출소를 앞두고 있었다. 앞으로의 현실로의 적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이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마이클은 그녀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한다고 했다. ‘책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다시금 과거에로 회귀되는, 로맨스를 한나는 기대했을까? 이제는 늙어가는 노파와 중년 신사로 변해버린 두 사람의 로맨스가 과연 이뤄질까? 관객들의 관심은 모아진다. 하지만 ....
나는 두 사람의 그러한 로맨스를 방해한 요소를 ‘책 읽어주는 남자의 수치심’으로 보고 싶다. 마이클이 최소한 십수년 차이나는 한나, 변호사와 수감중인 죄수와의 관계에 대해 Clear하게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나가 마이클에게 어떤 애정어린 손길과 제스쳐를 취하길 원했지만, 마이클은 한나가 출소하면 지낼 여러 가지 물리적인 환경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자기 마음을 표했다. 한나는 거기서 깊은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녀는 전범戰犯이란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전범이기 때문이라는.
특별히 한나가 마이클의 글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테잎을 통해 글을 깨우쳐간다. 영화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대목이 있는데, 한나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고 상부에서 지시하는 대로 행했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비원...그것은 단순히 그렇게 해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문맹을 깨치고 책을 읽음으로서 자신의 무지한 죄력, 수용소의 경비원의 그 책임이 얼마나 인류에, 유대인들에게 처절한 범죄임을 깨닫게 된다. 그로 인해 한나 슈미츠는 수용소에서 벗어나는 그 자유의 몸이 되는 날, 오히려 다른 길을 선택한 지도 모른다. 단순한 마이클의 로맨스, 사랑에 대한 배신감의 차원을 넘어 한 민족에 대한 한 여인의 죄책감, 한 민족에 대한 독일인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자살’로써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말과 어느정도 문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그녀의 문맹탈출은 도리어 생명탈출이 되어버린 셈이다. 작품중의 여주인공 이름이 한나이고, 한나 아렌트의 이름도 같은 한나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자신의 죄책guilt과 죄악, 전범인 것에 대한, 그리고 문맹에 대한 수치심의 깊이를 노인이 되어 절감하게 된다. 그 수치심과 죄책감의 심각성을 절감하는 가운데 과거의 사랑을 나누었던, 비록 그것이 불장난이라도 할지라도, 마이클에게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느낀 것을 아닐까? 그 유리벽이 두터움에 절망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전범에 대한 깊은 절망과 무지의 통탄함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싶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시인하는 것도 아프지만, 그 잘못을 사람들 앞에서 고발당하고 폭로되어지는 것, 발설되어지면서 자신의 영혼이 벌거벗겨지는 현실은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한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 대목을 스스로 감추면서 넘어갔을지 모르겠으나, 문맹을 탈출하면서부터 자기 자아가 견딜 수 없는 멘붕mental break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혼이 감당할 만한 수위를 넘어버린 상황에서 그녀는 용기는 낸다. 자살이 무슨 용기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것을 한나의 불굴의 용기라고 해석하고 싶다(영화이기에 나는 이렇게 자살을 불굴의 용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현실에서의 자살은 비추이다). 전범재판에서 독일은 전쟁의 원인과 이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앞에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가장 개인적이지만, 가장 정치적인' 행동을 취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한다고? 한 나라의 왕, 대통령, 총리가 말이다. 쉽지 않다. 빌리 브란트의 불굴의 용기라고 칭찬하고 싶다. 브란트 총리는 이후 자신의 책에서 "독일의 비참한 과거사와 살해당한 수백만명에 대한 가책으로 했던 일"이며, "말로는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빌리 브란트의 속죄의 용기이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때는 무릎을 꿇고 비는 것 밖에 없다. 빌리 브란트 총리가 그러했다. 그것은 인류와의 악수의 제스처이자, 과거의 역사와의 화해의 몸짓이다. 무릎 꿇고 비는 것은 굴욕적인 것이지만,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면 힘이 있고 화해의 길이 숨어 있다.
불굴의 용기를 보여준 빌리 브란트 총리 한나는 역사 앞에서, 과거 앞에서, 그리고 자신의 자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화해는 바로 자신을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녀는 견딜 수 없는 수치심과 죄책guilt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면이 나를 감동시켰고, 다른 이들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목에 나는 큰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아, 영화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싶은게 참 가슴 벅찬 경험을 간만에 했다. 그것도 3일에 걸쳐서 영화를 짬내서 보면서 말이다.
엄청난 흥분과 감동의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입니다
a 다시 리뷰를 쓰고 싶은 영화
이 리뷰는 30대 때에 쓴 글을 기초로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기억이 휘발되어 다시 한번 영화를 더 보고 리뷰를 다시 쓰고 싶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진짜 마음은 그러한데. 지난번에 <인간중독> 영화리뷰를 거창하게 시작하다가 너무 힘들었다는. 김진평대령(송승헌)편, 종가흔(임지연)편 운운하다가 거덜나는 줄 알았습니다. 논문 쓰는 것도 아닌데, 거의 소논문 수준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좋은 영화, 좋은 텍스트는 음미하면 음미할 수록 진국의 느낌이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혹여나 그때 쓴 <인간중독>paper가 궁금하신 분이 있을까봐 아래링크에 살짝 걸어둡니다, 1번째 티스토리 블로그에 있어서요!)
b 연기자, 케이트 윈슬렛과 뱃살 에피소드
요근래 케이트 윈슬렛이 중년여성의 연기를 하는 영화촬영 장면에서 뱃살이 과하게 노출되는 장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검색창에다 '케이트 윈슬렛'하고 치면 '뱃살'이란 연관어가 뜬다니 그만큼 회자된 에피소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영화관계자들이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고 케이트 윈슬렛에게 물었는데, 케이트 윈슬렛은 그냥 다 노출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뻐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극중의 인물, 캐릭터의 모든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노출하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명배우는 명배우입니다.
C 2008년은 케이트 윈슬렛에게 잊을 수 없는 해
케이트 윈슬렛은 영국 버크셔 주 레딩에서 태어났는데요, 조부모부터 극장을 운영한 집안이었고, 남동생 조스 윈슬렛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배우인 말 그대로 배우집안입니다. 12세부터 TV광고에 출연하고 아역배우로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ETA) 여우주연상을 거머쥡니다. 1995년에 아카데미상에서 첫 지명된 이후 13년의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대박인 것은 당시 남편이었던 샘 멘더스가 감독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골든글로브상에서 영화/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동시에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더 리더>를 통해 크리스틱 초이스 영화상 여우주연상, 시카고, 라스베이거스, 런던, 샌디에이고, 밴쿠버 영화 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2008년은 케이트 윈슬렛에게 상복이 터진 해인 듯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왜 그런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입니다.
긴 글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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