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알KaRL21입니다. 8월이군요. 8월 한달도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로맹 가리의 <내 삶의 의미>란 책인데요. 이 책은 로맹 가리란 사람과 에밀 아자르란 두 작가와 연관된 비밀을 보여주는 인터뷰집입니다. 궁금하시죠?
INDEX
로맹 가리 VS 에밀 아자르
비평가들의 편견
카멜레온 같은 문화적응자
로맹 가리의 구심점인 어머니
로맹 가리의 작품의 구심점, 여성성의 가치
이중 생활의 마침표를 찍다!
로맹 가리의 한 팬은 로맹 가리의 글의 진면목을 알고 싶어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새벽의 약속』의 번역은 정말 찌질하다(의역함)고 했다. 그리고 그가 죽었기에 더 이상 그의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해 굉장히 비통해했다. 로맹 가리가 그리 대단한가! 싶었다.
새벽 3시에 눈을 떴는데, 잠이 안 왔다. 결국 로맹가리 읽기의 첫 출발점으로 『내 삶의 의미』를 읽었다. 이 책은 로맹가리의 소설이 아니라 로맹가리의 인터뷰집이다.
*1980년 로맹 가리가 죽기 몇 달 전에 촬영되었다. 언론에 공개된 것은 로맹 가리 사후 1982년 2월 7일이었다.
나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이전에 구입했다. 그리고 지금 잘 숙성시켜 묵혀두고(?) 있다. 로맹 가리, 로맹 가리! 헉!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같은 인물인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대박!
동명이인이 아니고 이명동인인 것이다.
로맹 가리란 이름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그였다. 그의 화려한 전력을 보라! 전투기 조종사, 외교관, 베스트셀러작가, 영화감독, 영화배우 진 세버그의 연인...그런데, 일부 비평가들은 로맹 가리의 업적과 필력을 깎아내리기에 최선을 다했다. 1956년 『하늘의 뿌리』란 소설로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은 로맹가리였다. 하지만, 주위에선 로맹 가리의 작품,『유럽의 교육』은 전투기 조종사 시절, 죽은 옆 동료의 노트를 훔쳤다고 음해한다. 또한 단 한권의 책의 저자로 남을 것이라고 비방했다.
이 때 로맹 가리는 히든 카드(?)를 꺼내든다! 그것은 바로,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자기의 새 작품,『자기 앞의 생』을 내놓는 것이었다. 이 책이 대박을 났다! 같은 작가에게 두 번이나 주지 않는 공쿠르상은 또 받게 된다. 이때부터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중생활은 시작된다. 웃긴 것은 이전에 로맹 가리를 혹평했던 비평가들이 에밀 아자르의 작품에 대해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다는 것. 젠장!
『오만과 편견』의 명문장이 또 다시 생각난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정말 그 꼴이다.
소설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아니 로맹 가리 삶 자체가 소설이요, 문학이다.
로맹 가리는 1914년에 러시아에 태어났지만, 러시아에서 죽 자란 것이 아니었다. 폴란드(7세), 프랑스(14세), 외교관으로 지낼 때는 불가리아, 스위스, 미국에서도 문화적인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불안정한 환경 가운데서 로맹 가리는 카멜레온처럼 적응해야만 했다. 그 가운데 로맹 가리의 숨통을 틔운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싶다. 그는 9세 때부터 글쓰기를 러시아로 쓰기 시작했다. 러시아 태생이지만, 자신의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프랑스’였다. 훗날 로맹 가리가 프랑스 작가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지독한 ‘프랑스 숭배사상’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로맹 가리에겐 변하는 국제적인 문화와 지독한 가난에 적응해야 함과 동시에 어머니의 생각대로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사이에서 자칫 잘못하면 엇길로 나가는‘주변인’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진짜로 주변인이 될 뻔했죠. 시쳇말로 우범자로 부르는 주변인 말입니다. 나를 구해준 구심점은-그 때만 해도 중심이 있었지요-어머니의 이미지였던 것 같습니다.’(22p)
어머니는 항상 “넌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프랑스 대사가 될거야.”라고 했다. 결국 로맹 가리는 어머니의 다소 억압적이면서도 고지식한 교육이었지만, 위대한 작가와 프랑스 대사라는 꿈을 이뤘다.
‘나의 어머니가 여자로선 한창 나이인 서른다섯 살 때부터 오직 아들의 미래를 위해 헌신한다는 일념으로 여자로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내게 건 그 희망을 이루는 일 말입니다.’(47p)
군대 장교로 있으면서 상사의 배려로 어머니가 계신 니스(프랑스)행을 허락받는다. 하지만, 그토록 자식의 성공을 바랬던 어머니는 이미 3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충격적으로 전해듣는다.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죽기 전에 이미 2백여 통의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맡겨두고 아들에게 대신 소식을 전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을 로맹 가리는 ‘탯줄이 계속 작동하게 해 두었던 것’(55p)으로 표현했다.
‘그것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꿈까지 이룬 셈이지만, 그러나 그건 우연이었습니다. 내가 애써서 이룬 게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외무부 소속 외교관이 된 것 말입니다. 그렇게 니스에 도착했는데, 내가 전쟁에서 살아남아 레지옹도뇌르 훈장까지 받은 장교가 되었고, 해방군의 일원이자 이름난 작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장차 외국에서 프랑스를 대표할 인물이 된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어머니는 이미 3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56p)
아들 로맹 가리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은 로맹 가리의 삶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성입니다. 주의하세요. 여자들이 아니라 여성, 여성성 말입니다. 여성들, 여성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내 삶의 큰 동기이자 큰 기쁨이었습니다....그러니깐 나의 모든 책, 내가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쓴 그 모든 것에 영감을 준 것은 여성성, 여성성에 대한 나의 열정입니다....내가 세상 최초의 여성적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로 말한 최초의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정함, 연민, 사랑 등은 여성적 가치들이지요......
나와 여성들의 관계는 무엇보다 나를 위해 희생한 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숭배였고. 물론 성을 포함한 모든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책을 쓰더라도 여성성은 그 책에 결핍으로서, 구멍으로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삶의 철학으로 ’짝‘외에 다른 개인적인 가치들은 알지 못합니다.....
무슨 다른 소설을 써서 어떤 영광을 얻고자 해서가 아니라, 그저 여성성에 대한 사랑, 여성에 대한 사랑을 좇아서 말입니다......’(114-118p)
그녀와는 9년동안 부부생활을 하고 이혼한다. 그녀는 로맹가리가 죽기 한 해 전인 1979년 8월 알코올과 약물중독으로 자신의 자동차 속에서 죽는다. 이후 로맹 가리는 그녀의 죽음의 책임이 FBI에 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당시 FBI는 '좌파'란 딱지를 진 세버그에게 붙였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자살은 진 세버그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로맹 가리는 1980년 12월 2일에 권총자살을 한다. 그리고 1981년 6월 30일, 로맹 가리의 5촌 조카이자 에밀 아자르 역할을 했던 폴 파블로비치는 진짜 에밀 아자르는 자신이 아니라 로맹 가리라고 언론에 폭로한다. 7월 17일, 로맹 가리가 죽기 직전에 출판사로 발송해둔 텍스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출간된다. 7년동안 무성한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던 ‘아자르 사건’은 로맹 가리의 죽음으로 마침표로 찍는다. 파리 문단은 전설적인 작가 로맹 가리와 신예 천재 작가 에밀 아자르도 함께 잃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사건에는 복합적인 원인과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작가의 책제목처럼 ‘말이 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진짜 웃긴 것은 자신의 오촌 조카, 에밀 아자르 역을 했던 폴 파블로비치가 점점 로맹 가리의 통제에 벗어나 진짜 아자르 행사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1978년에 『솔로몬 왕의 고뇌』의 집필을 중도하차한 것도 이런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는 매년마다 책을 집필했던 작가였기에 더욱 그런 의혹이 든다. 아마 그는 가면극의 피날레를 죽음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전적 작품을 또 쓸 만큼 내 앞에 시간이 많아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죽기 몇 달 전에 고백했던 것이다.
로맹 가리는“내가 타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나의 소설들이다. 나는 내 소설 속에 있다.”(1978년 인터뷰)
“작가는 자기 자신의 최고의 것을, 자기 상상에서 끌어낸 최고의 것을 책 속에 담고 그 나머지 앙드레 말로의 표현대로라면 ‘한 무더기의 보잘 것 없는 비밀’은 홀로 간직하지요.”(129-130p)
소설가를 마법사에 비유했던 로맹 가리는 서른 편의 마법책을 우리에게 남겨두고 떠났다. 하지만, 나는 로맹 가리의 삶 자체가 마법사의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전투적인 삶은 아들에게 제대로 전해졌다. 어머니가 줄곧 이야기한 것은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과 환상에 불과했다. 또한, 한 뼘만 어긋나도 ‘주변인’이란 탈선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로맹 가리 ‘위대한 작가와 외교관’이란 마법을 이루어 낸다. 로맹 가리는 삶과 작품 세계에서도 위대한 마법사로 불려도 좋을 작가이다!
이 인터뷰집은 로맹 가리란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처럼 살다 간 작가, 로맹 가리 & 에밀 아자르에 대한 좋은 참고서가 될 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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