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 넘치는 이기호 우화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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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넘치는 이기호 우화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5. 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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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위트 넘치는 이기호!

이 책은 40여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짤막한데 이기호의 지적과 통찰이 돋보인다. 그리고 가끔씩 독자를 웃게끔 하는 이기호 특유의 위트가 제법 맛있다!

 

 

이기호의 <작가의 말>이다.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

짧았던 사랑일수록 치열하게 다뤘거늘’

 

 

 

 

1 청춘

‘준수는 강원도를 향하는 내내 말없이, 어쩐지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로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게 단순히 우리 미취업자들의 일상 표정이라고만 생각했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했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졍...나도 눈높이를 낮추고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이놈의 나라는 한번 눈높이를 낮추면 영원히 그 눈높이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 그게 먼저 졸업한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내 땀과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땀의 무게가 다른 나라, 설령 눈높이를 낮춰 성공했다 하더라도 월급에서 학자금 융자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라...’(26p)

 

 

나는 문득 아는 지인이 생각이 났다. 그 놈이 영어학원 강사를 했었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작은 소자본으로 대패삼겹살 집을 오픈해서 아주 잘 나갔다. 그래서인지, 후에 들리는 소문에 이 놈이 BMW를 20대에 산 것이다. 내가 조금 놀랬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자기가 그렇게 사고 싶으니...그리고 후에 들리는 소문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했다. 나는 문득 『90년생이 온다』의 이야기가 메아리쳐 울린다. 2016년인가 27만명이 공무원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자는 6천명이라고 했다. 그 나머지 친구들은 재수, 삼수, 사수...그렇게라도 해서 되면 좋은데, 안 되는 애들이 너무 많은 나라. 근데, 그놈이 4월에 시험친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그놈은 공무원에 합격을 했고, 차가 문제인데, 처음에는 공무원이 BMW를 새파란 나이에 타고 다니는게 너무 힘에 겨웠는데, 나중에는 다들 이해해주신다는 후일담이다).

 

 

 

 

그래서 고미숙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란 책을 펴냈던가! 20대, 30대의 대한민국의 백수들을 위한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를 사이다 발언으로 잘 적어놓았다. 하지만, ‘백수’라는 말 자체가 주는 엄청난 부정적인 이미지가 20대가 아닌 30대, 40대에겐 극혐의 단어가 아닐까! 처음에는 청년들을 위한 『아프니깐 청춘이다』의 현대버전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읽고난 후 현실의 치열함에 작가는 너무 이상적으로 이야길 펼쳐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말 20대, 30대의 백수들이 고미숙이 이야기한 그 합숙소같은 공간에서 식도락을 같이 하면서 백수 아닌 백수의 삶을 즐기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혀를 찰 수도 있는 부분, 어찌 보면 새로운 청춘에 대한 대안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싶다.

 

 

    

 

 

만년백수로 지내는 아들이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부모님을 위해 또띠아를 해보고자 시도했지만, 그게...

어머니 왈, “뽀삐를 왜 해먹어? 이 새벽에?”

그놈의 취업이 무엇인지, 좌로 가도, 우로 가도,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걸린다. 이게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라니...이기호는 그런 시대의 슬픔과 아픔과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주고 있다. 이것이 이기호의 맛이다.

 

 

 

 

2 아내

‘이런 말을 하면 좀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우리 집 막내는 제 엄마가 빨래가 되어버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사라지고 난 베란다엔 아무런 흔적 없이 아내가 평상시 집에서 입던 목 부위가 늘어난 티 한 장만이 건조대 위에 초라하게 널려 있었거든요. 세탁기가 있고, 빨래 건조대가 있고, 재활용품 모아두는 통이 있고, 아내의 간이침대가 있는 베란다에 외롭게 걸려 있는 아내의 늘어난 티셔츠 한 장....저는 아내의 간이침대에 앉아 그 티셔츠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바로 앞 동 아파트의 불 켜진 주방이었습니다. 그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는 다른 많은 아내들....아내 또한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겠죠.

한데 정말 제 아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정말 빨래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저는 정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48-49p)

 

 

아내가 증발해버렸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아내들은 ‘증발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이 휘발되어진다는 느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여성들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20대, 30대의 수많은 부부들, 그리고 남편과 아내들. 그들에게 짐 지워진 육아의 무게. 삶이 만만치 않다.

 

 

 

이기호 작가는 언론사와 30년을 계획하고 육아일지를 연재하기로 했지만, 3년만에 그만두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3년동안 연재한 내용이 글로 묶어져 나온 것이 바로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이다. 표지에는 ‘가족소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기호 작가의 육아일기(일지)인 셈이다. 그가 느끼는 작가로서의 감수성과 생각들, 특별히 ‘말 많다고 싫어하죠?’고 집에서 잠시 생활하게 된 조카의 고백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3 애완견

“사람한테 일 년이 강아지한텐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지켜준 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주면서.”(83p)

 

사람이 개만도 못할 때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종종 동물들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아붓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어디 있던가! 그래도 나만 보면 반갑다고 꼬리치는 동물들의 리액션에 어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으랴!

 

 

 

 

4 부모

저승에 도착했다. 304호는 주인공이 지낼 방이다. 저승치고는 의외로 지낼만하다 싶었다. 그런데, 불을 켜주지 않는다. TV는 전원은 들어왔지만 화면은 나오지 않고 음성만 들렸다. 눈을 떠도 암흑천지인 방이었다.

불로요양병원 304호에 묵을 주인공은 영원히 어둠 속에서만 지내야할까?

“선생은 어머니께 얼마 만에 한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여기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109p)

 

이기호의 이 단편소설은 너무나 짧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솝우화가 아니라 이기호 우화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5월 8일이 생일인 아들은 자기 생일이 어버이날이라 얼마나 복잡할까? 이런 구상과 아이디어를 글로 엮어낸 이기호의 위트가 참 빛난다.

 

 

아버지가 담뱃값 인상을 대비해 집을 담보로 해 융자받아 2500만원으로 담배를 사재기했다는데...담배를 피우지 않던 아들은 그 담배를 유통기한 때문에 팔지를 못해 20년동안 피웠는데, 아직 2천 갑이 더 남아 있다고...그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담배를 2500만원어치 샀다. 담배값이 2천원씩 오르기 전에 아버지가 생각한 투자였다. 하지만, 담배는 몇 개월이 지나면 맛이 변한다고...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담배 사재기를 했을 것인데...

 

 

 

 

5 기득권

치킨 배달하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이용 불가라고 한다. 1702호에 치킨 배달을 가려면 계단이 320개가 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치킨집 주인이 치킨 알바구한다고 할 때 필수요건을 ‘원동기운전면허증’이 아니라 ‘체력’이라고 꼽은 이유가 있었다.

 

‘그 두달 동안 나는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가 아닌, 흡사 히말라야 산악인들을위한 세르파가 된 심정이었다(언젠가 한번은 18층까지 낑낑거리며 올라갔더니 내 또래 젊은 여자가 ’어머, 우리는 프라이드 아니라 양념 시켰는데요?‘라면서 다시 갖다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142p)

 

“이게 왜....이런 일들이 생긴 거죠?”

“글쎄요. 아파트에 사니깐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143p)

 

우리 이러지는 맙시다. 아무리 배달의 민족이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알바하는 애들이 다 우리 자식이고 자녀들이고, 후배들이고 동생들인데...

 

 

 

이기호 우화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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