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의 <고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룬다.
노파-(노파의 딸.애꾸소녀)-금복-춘희(금복의 딸) 란 인물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노파는 전근대를 상징하고, 금복은 근대, 춘희는 탈근대를 상징한다(평론가의 말 중에서).
1부 부두
노파의 이야기를 잠깐 하다가 <고래>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린 소녀 금복이 어떻게 부두로 흘러 들어와서 젊은 생애를 보내는지 보여준다.
2부 평대
금복이 평대란 동네로 들어와 돈벼락을 맞게 된다. 돈벼락은 노파가 지붕에 숨겨두었던 돈뭉치를 우연찮게 발견하게 된다. 이 돈벼락으로 인해 금복의 사업적인 역량이 발휘된다. 돈이 있고, 일자리가 마련되니 사람들이 모이면서 평대는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금복은 노파가 사놓은 남발안(‘남쪽에 있는 벌판의 안쪽’이란 뜻) 토지에다 벽돌공장을 지으면서 사업의 날개를 더 달게 된다. 금복의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금복은 자신의 소원을 극장건설을 통해 성취한다.
3부 공장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이야기의 중심축이었던 금복이 죽고, 그녀의 딸 춘희가 누명으로 감옥에서 지낸 생활과 자신이 자란 평대로 들어와 이전의 벽돌공장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래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중심인물은 금복이란 여성이다. 금복의 아버지는 엄마 없는 금복을 곁에 두고 키우길 원하지만, 금복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를 떠난다. 금복의 아버지는 딸이 떠난 것을 알고 상실감에 저수지에서 죽는다. 금복은 ‘비린내’로 대변되는 생선장수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장사를 한다. 하지만, 젊고 육감적인 금복의 욕망은 늙은 생선장수에게서 만족할 수가 없었다. 부두의 하역부에서 일하는 덩치가 보통 사람들보다 큰 걱정을 만나면서 새로운 애정이 싹튼다. 금복은 걱정과의 사랑에 올인한다. 그들의 꿈같은 신혼생활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걱정이 우연한 사고를 통해 몸을 크게 다치게 된다. 천하장사같아서 믿고 의지했던 애인이었다. 금복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걱정의 병수발에 전력을 다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때 부두를 자리잡고 있던 칼자국을 만나게 된다.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그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화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은 젊고 아름다운 금복에게 빠져든다. 일본 야쿠자출신에 손가락이 6개 밖에 없는 칼자국이 금복에게 반한 것은 자신이 일본에서 사랑에 빠졌던 기생 나오코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나오꼬의 화신으로 보인 금복과 칼자국은 그렇게 동거하게 된다. 부두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칼자국의 보호 아래 걱정과 칼자국과 금복은 한 지붕아래 동거한다. 칼자국과 금복은 질퍽한 애정관계에 대한 걱정의 심리적인 공백은 식탐으로 채워진다. 원래부터 덩치도 덩치거니와 자신의 모든 일당을 식비로 충당할 정도로 걱정의 욕망의 결정체는 ‘식탐’이었다. 먹기만 하고 일하지 않으니 걱정의 몸은 비대하기 그지없는 식충으로 변한다. 칼자국을 만나기 전 금복은 걱정이 아플 때 간절한 기도를 하늘에 드렸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대, 스스로 완전한 존재여. 나의 모든 것, 내 모든 비밀과 기쁨, 내가 걸어온 모든 발걸음. 내 모든 피와 살을 들어 바라건대 부디 이 이를 구해주소서. 그 대가가 무엇이든 기쁘게 받겠나이다.’(86p).
현실은 금복의 기대와 어긋났다.
비바람이 몹시 몰아치던 날, 부둣가에 걱정과 칼자국이 같이 있는 것이 보였는데, 걱정이 바닷가에 빠지는 것을 금복이 목격한다. 금복에겐 걱정은 첫사랑의 상징이요, 버릴 수도 없는 애물단지와 같은, 애증의 결정체였다. 금복은 부둣가에 있는 작살로 칼자국은 찌른다. 칼자국이 걱정을 죽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칼자국은 죽어가면서 자신은 걱정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삶의 육체적, 정신적 기둥을 한꺼번에 다 잃은 금복은 평대에 찾아들게 된다. 금복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한 날 밤에 그날따라 엄청나게 쏟아진 강수량에 의해 지붕에 내려앉게 된다. 절망할 겨를도 없이 금복은 돈벼락을 맞게 된다. 엄청난 비가 아니었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서까래와 반자 사이에 이중천장이 바로 전에 살던 노파의 비밀금고였던 것이다. 금복에겐 걱정의 딸로 여겨지는 춘희가 함께 있었지만, 이 돈벼락이 그녀를 욕망의 골짜기로 몰아가게 된다. 예전에 같이 살림을 차린, ‘비린내’의 생선장수도, 금복의 다방에 드나들었던 문(文), 쌍둥이 자매와 점보, 창녀짓을 하다가 포주에게서 도망쳐 금복집에서 살게 된 수련, 약장수...수많은 사람들은 금복과 연결되어 있다. 금복은 칼자국을 통해 배운 서양문물인 영화(극장)의 위대함을 알았기에, 훗날 자신의 평대에 ‘고래’모양의 극장을 만들게 된다.
‘그날 이후, 소녀를 지배한 건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인생의 절대 목표는 바로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였다. 그녀가 좁은 산골마을을 떠난 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그리고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몸을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가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271p)
걱정의 식탐, 칼자국의 첫사랑에 대한 집요한 집착, 자신을 구원해준 금복을 배신하고 약장수와 줄행랑을 쳐 달아난 수련, 금복의 모든 재산을 가로채 수련을 꼬여 딴 살림 차린 약장수, 약장수는 돈에 대한 욕심이 채워지자 권력과 명성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쌓아올린 욕망의 탑이 과연 견고할 수 있을까? 모든 욕망이 집약된 인물은 ‘금복’이다. 산골소녀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세월의 세파에 더욱 탐욕적으로 변해가는 사업가 금복은 창녀촌에서 탈출한 수련을 보고서 또 다른 욕망에 빠져들게 된다. 여자가 아닌 남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 이전에 남편역할과 조력자 역할을 했던 文이 있었지만, 그녀는 수많은 외관남자들과 욕망을 분출시켰다. 그녀가 이젠 남자가 되고자 한 것이다. 그 욕망의 벼랑 끝은 어디일까?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301p)
그녀의 욕망의 집합체였던 '고래'극장은 첫날 성대한 축제와 함께 축하행사를 가지고 영화를 상영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방화사건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린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고 금복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평대란 소도시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살아남은 자는 오직 춘희뿐이었다. 금복은 자신에 곁에 늘 함께 있었지만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딸의 존재를 마지막에서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뭘하나?...욕망의 끝은 언제나 씁쓸하다.
‘고래’는 금복의 극장모양새이기도 하지만, 금복의 모든 욕망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인간의 욕망을 쓸어 담고 퍼 담은 욕망덩어리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오버랩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과연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욕망의 최종적인 목적지는 어디인가?
블랑쉬: 사람들이 제게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서, 묘지란 이름의 전차로 갈아 탄 다음 여섯 블록을 가서 내리면 이상향이라던데.
유니스: 여기가 바로 그곳이예요.
블랑쉬: 이상향이란 말인가요?
유니스: 바로 이곳이 이상향이예요.
여담1...<고래>이야기는 1,2부 금복을 위주의 이야기라서 굉장히 흥미로운 데, 3부 춘희로 넘어가면서 굉장히 이야기가 시들어 해지는 게 아쉽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천명관을 처음 알았는데, 이 사람은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도 하고 그런 인물이었다.
여담2...어젯밤에 절대적인 나만의 고요한 시간에,‘읽을까?’아니면 ‘쓸까?’고민을 했다. 참 그런 고민을 할 때도 있다 싶다...ㅋㅋㅋ결국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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