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목민의 본질은 FLOW이다
1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2유목민의 생명, 기동성
3 유목민의 생명줄과 같은 ‘말타기’
4 칭기스칸의 무기는 바로 ‘스피드’
5 칭기스칸 제국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6 우리는 디지털 유목민이다
7 디지털 유목민의 본질: FLOW
8 store가 아닌 flow
9 flow가 FLOW가 되고, FLOW가 flower가 되다
Epilogue... 노을의 '붙잡고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에 유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갔던 민족이 바로 몽골민족이었다.
그들은 유목민이었다. 유목민이 유목민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환경’때문이었다. 몽골은 ‘강(Gan: 집중적 가뭄)’과 ‘쪼드(Dzud: 강추위)’의 두 가지 큰 재앙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끊임없이 이동해야만 했다.
유목민의 생명은 기동성이다. 짐이 많으면 전투력이 떨어진다. 유럽기사단 갑옷과 전투무기의 무게는 70kg, 유목민의 군장은 7kg에 불과했다. 식량 또한 소 한 마리분의 고기를 말린 육포(보르츠)를 소 방광에 모두 넣고 운반하기 간편하게 하였다. 병사 한 명의 1년 식량으로 너끈했다. 전쟁터에서 밥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셋팅하고 다 먹은 후에는 그것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이 모든 거추장스러운 일들을 제거해버렸다. 그들의 식량은 육포하나로 끝!
저자는 유목민에 대한 특성을 이야기하면서 베두인을 언급한다. 베두인은 시리아, 이란, 아라비아, 아프리카 북부의 건조지대에 사는 유목민을 지칭한다. 우기에는 사막으로, 건기엔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굶주림을 이기려고 하구(Hagou, 남자용 띠)나 베림(Berim, 여자용 띠)으로 위장을 조이고 살면서도 유목민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유목민은 어떤 모습일까.
참다운 베두인은 낙타만을 소유한 자다. 사막을 방랑하는 그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기동성이다. 그러니 움직임을 둔하게 할 무거운 물건은 결코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위대한 낙타꾼은 자유로운 인간을 뜻한다. 그들은 한 번 깨어난 곳에서 두 번 잠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그러게 살기를 바랐던 어느 시인처럼 산다.‘(30p)
그들은 정착하는 삶, 정착사회에 대해 ‘똥’에 비유한다. 정착사회에서는 똥도 한 자리에 쌓이기 때문이다. “네 놈은 네 똥이 있는 데서 계속 뒹굴며 살아라”란 말을 자식에게 하면 가장 큰 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유목민의 생리에 적합하기 위해선 ‘푸른 늑대의 후손’다운 몽골인의 기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몽골소년의 성인식에서이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가 몰려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이들의 성인식은 치러진다. 눈도 뜨기 힘든 그 휘몰아치는 바람의 벌판에서 이제 갓 10살 된 10여명이 소년들의 성인식이 거행된다. 왕복 80km 에 달하는 눈보라 길을 출발한다. 그 혹독한 의식 가운데 숨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살아남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말 타기를 포기해선 아니 된다. 고삐를 놓쳐 말에서 떨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말 등에 스스로 올라타지 않으면 그 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존법을 거기서 터득하는 것이다.
말, 기마병이라면 훈족의 기마병도 대단했다.
‘훈족의 생업은 전쟁이었고, 그들의 일자리는 말 잔등이었다’(39p).
유목민족 몽골의 칭기스칸의 무기는 ‘스피드’였다. ‘말’이란 동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자는 그 스피드speed는 지금, 인터넷이란 도구로 전환된 新유목민의 시대를 가져왔다고 이야기한다.
칭기스칸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나폴레옹, 히틀러가 정복한 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넓다(777만 평방km). 그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첫째, 칸의 열린 사고였다.
둘째, 법치주의 실행이었고,
셋째, 평생의 동지인, 4준마, 4맹견이 있었다.
넷째, 포용정신이다.
여기에 칭기스칸의 가정의 예를 들 수 있다. 칭키스칸의 아내가 적군의 아들을 배었다. 놀랠 일이다. 하지만, 그 아내를 거둬들였다. 여기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대로 넘어간다. 칭기스칸의 아버지는 예수게이 바아토르이다. 예수게이의 할아버지는 몽골 울루스의 초대 칸, 카불이었다. 카불칸의 손자 예수게이에게는 그런 대업을 이룰만한 힘이 없었다. 한낱 일개 병사에 불과한 예수게이는 몽골고원에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조상들이 세웠던 조국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사건이 바로 ‘약탈혼’이었다. 당시 미스 몽골로 불리만큼 절세미인인 허엘룬-지금 몽골인들에게 그녀는 우리가 신사임당을 존경하는 것 이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바친다-은 다른 부족인 메르키트부로 시집을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수게이가 허엘룬을 납치한 것이다. 그의 명함이 몽골 전역에 뿌려진 사건이다. 후에 예수게이는 오랜 숙적인 타타르 부족과의 전쟁에서 적장을 죽이고 돌아왔다. 와 보니 허엘룬이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자기가 죽인 적장의 이름을 따 아이를 ‘테무친’이라 불렀다. 이 아이가 바로 칭기스칸이다. 그는 칸으로 오를 때까지 ‘테무친’으로 불린다. 자신이 이름이 적장 장수의 이름이었다는 것. 기분이 어땠을까? 예수게이는 다섯 유목 민족(몽골부, 메르키부, 케레이트부, 나이만부, 타타르부)의 통일을 시도하려다 견제세력에 의해 독살 당한다. 여기서부터 칭기스칸의 혹독한 ‘소년가정’과 같은 고난의 여정이 시작된다.
후에 칭기스칸에게도 일어설 기회가 왔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아내 버르테가 납치당한다. 누구에게? 바로 자신의 어머니 허엘룬이 시집가려 했던 메르키트 부족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칭기스칸에게는 아내를 찾아올만한 군대도, 힘도 없었다. 그는 어릴 적 동맹관계였던 옹칸(토오릴)과 자모카를 설득해 ‘아내 찾아오기’프로젝트를 실행한다. 결과는 연합군의 확실한 승리였다. 전리품은 몽땅 동맹군들에게 나눠줬다. 대신 전승(戰勝)의 지도자로서의 명분과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되찾은 아내 버르테는 이미 만삭이었다. 기분이 어땠을까? 아버지의 업보를 자신이 물려받은 느낌, 하지만, 칭기스칸 미적거리지 않는다. 칭기스칸은 적장의 아들에게 ‘조치’(나그네, 손님)이란 이름을 붙이고서, 그를 장남으로 맞는다. 다만 제국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 후계구도에서 장남은 배제시킨다. 후에, 조치와 그의 후손은 유럽을 정벌해 킵차크칸국을 세운다.
‘살기 위해 위가 아니라 옆을 봐야 하는 수평 마인드의 사회, 살기 위해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회가 유목사회다. 그 속에선 단 하루도 현실에 안주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끝까지 승부 근성을 놓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이 소중하다. 민족이, 종교가, 국적이 다르다는 것도 무시해버려야 한다. 아니 다른 사람일수록 더 끌어들여야 한다. 사방이 트인 초원에서는 동지가 많아야 살아남고 적이 많으면 죽게 된다.
그런 사회에선 완전 개방이 최상 가치로 통한다’(20p)
칭기스칸의 이런 정신은 자신의 가정에서 본을 보였기에 포용의 진정성이 민족 전체에 미친 것이다. 솔직히 적장의 우두머리의 애를 임신한 부인을 누가 품을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칭기스칸의 매력과 리더십이 기염을 토하는 것이 아닐까!
칭기스칸은 오갈 데 없는 사람, 어려운 사람, 꿈은 품고 있지만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들의 제국 건설의 주역이 되었다. 가장 가깝게 자신의 아내 버르테부터가 그러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품어줄 줄 아는 그의 카리스마가 민족 전체의 혼spirit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또한, 칭기스칸은 그 어떤 적군이라도 돌아서면 품어줬다. 그의 4준마는 참모, 정책 지략가로 활동하였다면, 4맹견은 주로 전투의 지휘관 역할을 했다. 특별히 4맹견 중 제배(‘화살촉’이란 뜻의 이름)는 원래 적군의 명사수였다. 그가 포로로 잡혔다.
‘지금 저를 죽이시면 제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한 움큼의 흙만을 적십니다. 저를 용사로 받아주소서! 그러면 제 몸에서 흘러 나오는 피는 전 세계의 대지를 적실 것입니다.’(58p)
칭기즈칸에 항복한 제배는 평생 그를 따랐다. 한번은 콰레즘의 지배자, 술탄 무하마드의 목을 베어오란 명령을 받는다. 그의 추격전은 1만 km에 달했다. 지구 둘레가 4만 km이니 지구의 1/4을 돈 셈이다. 제배는 무하마드의 목을 들고 초원으로 귀환하던 1224년에 생을 마쳤다. 칭기즈칸과 8명의 동지들은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었다.
다섯째,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쌓이지 않는다.
『CEO 칭기스칸』의 부제는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칭기스칸의 탁월한 성과가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몽골민족의 유목민의 특성, 기마민족의 캐릭터를 살리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켰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흐르는 물만이 쌓이지 않는다’는 이 칭기스칸의 정신, 기업으로 말하면 창업정신은 손자 쿠빌라이 칸에 의해 무시되었다.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은 100여년 만에 쇠퇴를 맞이한다. 유목민의 이동마인드의 상실은 제국의 쇠퇴의 결정적인 단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칭기스칸은 생전에 늘 경고했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122p)
칭기스칸의 무기는 말의 기동성을 활용한 ‘스피드’였다. 그리고 단순함이었다. 짐을 최소화하고 최대한의 스피드로 이동하여 적군을 섬멸하는 전략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유목민이다. 우리는 新유목민, 즉 디지털 유목민이다. Urban Nomad는 정보를 수집하고 수렴하되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적절한 짐, 정보들은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안에 있다.’(140p)
인나미 아쓰시가 쓴 <1만권의 독서법>이란 책에 보면 ‘flow’란 개념이 나온다. 저자는 연간 700권 읽기의 독서생활을 목표로 하고 10년이면 7,000권의 책을 읽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1만권 이상의 독서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 권을 깊이 읽는 게 아니라 많은 책으로부터 작은 조각들을 모아 큰 덩어리로 만들어가는 것’(24p)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FLOW>란 개념이 등장한다. 저자는 독서도 음악처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음악을 암기하려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FLOW’는 ‘흐르다’는 말이다. ‘플로우 리딩이란 책에 쓰인 내용이 자신의 내부로 흘러드는 것에 가치를 두는 독서법’(33p)이다. 저자는 책읽기 뿐 아니라 책 관리에 있어서도 <store: 저장>이 아니라 <flow: 유동>으로 전환을 이야기한다.
디지털 유목민의 본질은 ‘flow’이다. flow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귀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서가의 꿈을 가진 우리에게 책만큼은 미니멀리즘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flow의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책장을 정리하고 관리하다보면 정말 책장에 최종적으로 남는 책을 보면서 ‘진정한 나’만을 만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살지만, 그 정보들을 다 안고 입력할 수도 없고, 저장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다. 우리는 유목민임을 기억해야 한다. 디지털 유목민임을.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토마스 헉슬리, 1887년
칭기스칸의 유목민 정신은 ‘플로우’이다. 흘려보내는 것이다. 인생도 흘러간다. 인생도 flow이다. 독서도 flow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유목민인 우리는 한 시대를 살고 칼 세이건의 말처럼 ‘지구는 우주의 창백한 푸른 한 점’에 불과한 공간에 살고 있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37p)
Urban Nomad, Digital Nomad로 살아가는 우리, 오늘 하루도 흘러가는 인생에 점(dot)을 찍으며 살 수밖에 없겠지만, 소유와 저장이 아니라 흘러가는 인생에 flow하는 것, 그 flow는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FLOW하는 것이다. 프랑스어로 FLOW는 ‘몰입’이란 뜻이다. 그런 flow가 이어질 때, 우리 인생은 만개한 flower(꽃)가 되지 않을까.
인생도 flow, 독서도 FLOW!
오늘 paper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음악입니다. 노을의 '붙잡고도'입니다. 인생도 flow~독서도 FLOW
그냥 생각이 나네요. 감상하고 싶으시다면,
이웃분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8월의 어느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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